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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② 동양미술사 : 한국미술Ⅰ

by 100billion_ 2024. 1. 18.

 

 

 

한국의 예술은 서예, 음악, 회화, 도예 등의 전통이 있으며, 자연의 형태와 표면 장식, 대담한 색채와 소리가 특징입니다.

한국 미술의 가장 초기 사례는 기원전 3000년의 석기시대 작품들입니다.

이것들은 주로 봉건적인 조각들과 최근 재발견된 암각화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초기에는 다양한 한국의 왕국과 왕조의 예술양식이 이어졌습니다. 한국 예술가들은 중국의 전통을 단순한 우아함과 자발성, 자연의 순수함에 대한 감상이라는 고유한 취향으로 수정했습니다.

고려왕조(918~1392년)는 광범위한 학문 분야, 특히 도자기 분야에서 가장 번성했던 시기 중 하나였습니다.

한국미술시장은 50개 이상의 소규모 갤러리가 출전하여 간혹 미술품 경매가 이루어지는 서울 인사동 지구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갤러리는 협력적으로 운영되며 소규모이며 종종 큐레이션되고 정교한 디자인의 전시물과 함께 운영됩니다. 모든 마을에는 작은 지역 갤러리가 있고, 지역 예술가들이 전통적인 미디어와 현대적인 미디어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아트 갤러리에는 일반적으로 미디어가 혼재되어 있습니다. 서양의 개념 예술을 전면에 내세우려는 시도는 한국 이외에서는 보통 뉴욕, 샌프란시스코, 런던, 파리에서 가장 성공적입니다.

 

 

전문가들은 한국 고유의 예술 문화와 중국 문화를 전파할 뿐만 아니라 자국 고유의 문화를 동화하고 창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함으로써 인식하고 선별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나라가 만들고 발전시킨 예술은 그 민족 자체의 예술입니다.

 

 

 

신석기시대

기원전 약 7000년 된 토기가 발견되었습니다.

이 도자기는 점토로 만들어 섭씨 700도 안팎의 온도에서 뚫린 구멍이나 반쯤 뚫린 구멍 위에서 구워졌습니다.

기원전 7,000년경의 토기 양식은 평저기로 부조무늬와 가로줄 등의 장식이 되어 있었습니다.

줄문형토기는 전형적으로 원추형의 바닥을 이루며 기원전 6,000년경 고고학적 기록으로 빗살무늬가 나타납니다.

이런 유형의 도자기는 시베리아풍과 비슷합니다.

무문형 토기는 기원전 2000년경에 등장하였으며, 크게 장식되지 않은 토기로서 주로 요리나 보관에 사용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청동기시대

기원전 2000년부터 기원전 300년 사이에 청동 제품이 한국에서 수입되고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기원전 7세기에 이르러 아연의 비율이 독특한 한국의 청동기 문화가 정착되었습니다.

이 기간에 제조된 아이템은 검, 단도, 창끝 등의 무기였습니다. 또 거울이나 종, 딸랑이 등의 제수용품도 만들어 졌습니다. 이 물품들은 문화 엘리트들과 함께 고인돌에 묻혔습니다.

또한 철이 풍부한 붉은 화분은 6세기경에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석관으로 알려진 네프라이트로 만든 쉼표 모양의 구슬도 고인돌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감칠맛은 곰의 발톱을 본떠 조각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시베리아의 영향은, 시베리아 미술의 X선 스타일로 '생명선'을 나타내는 동물의 바위그림에서 볼 수 있습니다

 

 

철기 시대

조선철기시대는 기원전 5~4세기경에 중국 철기문화가 도래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중국 동북부 옌저우와의 접촉에서 시작돼 나중에 중국 렐란 사령부를 통해 발전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국인은 항상 중국의 기술을 수입하여 한국만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그리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독자적인 기술로 재형성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중국의 철기 문화 도입은 고대 한국의 급속한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그 후 한국인들은 중국의 철 문화를 새로운 형태의 철 주조 기술로 바꾸었습니다.

기원전 300년경 철은 한국에서 널리 사용되었지만 한국의 철 문화는 수많은 고고학적 유물로 입증된 중국의 깊은 영향을 계속 받았습니다.

도차의 도입과 오르막 가마의 소성으로 한국도자기가 발전하였습니다.

 

 

삼국지

한반도의 지배권을 놓고 고구려, 백제, 신라 세 나라가 싸웠던 이 시기는 기원전 57년경부터 668년까지 지속되었습니다. 

 

 

고구려

불교 선교사들은 372년 고구려에 불교를 소개했고, 이후 만주의 중남부와 현대 한국의 북쪽 절반을 포함했습니다. 

불교가 문화에 침투하자 고구려 왕들은 부처님께 바치는 예술과 건축을 위탁하기 시작했습니다. 

고구려 미술의 주목할 점은 한국 고대 왕국의 일상생활과 문화를 생생하게 묘사한 고분 벽화입니다. 

유네스코는 고구려 고분군을 세계유산으로 지정했습니다. 

고구려 회화는 일본과 같은 동아시아의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작품을 창작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는 고구려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법륭사 벽화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벽화는 다른 두 왕국으로도 퍼졌습니다. 

이 벽화들은 불교의 중요성과 건축물, 당시 즐겨 입던 옷 등 고구려 왕국에 대한 귀중한 단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벽화는 한국 산수화와 초상화의 시초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무덤은 접근이 용이했기 때문에 그 보물은 약탈되었고 물리적인 유물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백제

 

백제는 세 나라 중 가장 위대한 예술을 가진 왕국으로 여겨집니다. 백제는 한국 남서부에 있던 왕국으로, 양나라와 같은 중국 남부 왕조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백제는 또한 이 시기에 일본 예술에 한국의 중요한 영향력을 가져온 왕국 중 하나였습니다.
백제의 불상은 자연스러움과 따뜻함, 조화로운 비율이 독특한 한국식을 보여주는 것이 특징입니다.

한국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는 많은 백제 법령에 특징적인 신비롭고 독특한 미소인 '백제미소"를 사용한 것입니다.

목조건축의 현존하는 예는 없지만 미륵사터에는 파괴된 사찰의 초석과 백제건축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보여주는 화강암탑 2개가 남아있습니다.

백제의 건축가와 장인들이 원래의 사찰을 설계하고 건립하는 데 도움을 주었기 때문에 법륭사에서 백제건축의 예가 수집되기도 합니다.

무령왕의 무덤에는 도굴범들이 약탈하지 않는 유물의 보물창고가 있었습니다. 

그 안에는 불꽃같은 금핀, 금동신발, 금띠(왕족의 상징), 용과 봉황이 그려진 금더미가 있는 칼 등이 있었습니다.

 

 

신라

 

신라는 한반도의 남동부에 위치했기 때문에 한반도에서 가장 고립된 왕국이었습니다. 

신라는 한반도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불교와 외국문화의 영향력을 사회에 도입한 마지막 나라였습니다.

신라의 왕릉은 거의 접근이 불가능해서 이 왕국에서 많은 한국미술의 예가 나왔습니다. 

신라 장인들은 금귀걸이와 왕관 등 에트루리아나 그리스 기술과 유사한 금 세공 능력으로 유명했습니다.

 

왕릉에서 발견된 푸른 눈의 사람들을 묘사한 유리나 구슬과 함께 유럽의 기법과 유사한 신라의 금공예품 때문에 실크로드가 한국까지 갔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습니다. 신라미술의 가장 주목할 만한 대상은 순금으로 만든 금관으로 나무와 뿔처럼 장식되어 있어 한국의 샤머니즘적 전통을 연상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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